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쓰 사건 (문단 편집) == 여담 == [[파일:오쓰사건.jpg|width=70%]] * 사건을 다룬 러시아측 일러스트에는 일본인에 대한 비하적인 시선이 여과 없이 드러나 있는데 [[오리엔탈리즘|딱 봐도 일본인들이 동남아 지역 주민들처럼 그려져 있을 뿐더러 복장 역시 당시 일본 군경들이 입던 서구식 제복은 고사하고 일본 전통 의상도 아니다.]] * 이 사건 당시 니콜라이 2세가 입었던 셔츠는 훗날 그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 도움을 줬다. [[소련 붕괴]] 직후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소련]] 시절에는 반동적이고 봉건적이라는 이유로 금지되었던 러시아 제국과 황실의 역사에 대한 자유로운 연구를 허용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붉은 군대가 일으킨 황실 학살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에 따라 [[암매장]]되었던 황실 일가의 유골도 재발굴했으나 정작 해당 유골이 실제 로마노프 일가인지 알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일본에 오츠 사건 당시 니콜라이 2세가 입었던 셔츠가 역사적인 유물로 보관되어 있었고 옐친 대통령은 일본 정부에 서신을 보내 셔츠의 혈흔에서 DNA를 추출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일본 정부가 응하여 유골과 혈흔의 대조하자 서로 일치하였다. [[로마노프 왕조]]의 방계 인물들과 대조해도 높은 유사도를 보였기 때문에 결국 해당 유해들은 니콜라이 2세와 그 가족으로 밝혀졌다. 오츠 사건 당시의 셔츠가 남아 있지 않았더라면 유골이 실제 황제의 유골인지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 2015년 [[마크 리퍼트]] 前 주한 미국대사가 [[김기종]]에게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 피습 사건|공격받은 사건]]이 벌어졌을 때 당시 한국의 [[극우]] 시민단체의 반응을 두고 이 사건과 비교하기도 했다. 해당 사건도 어느 망상에 사로잡힌 개인이 강대국의 외교사절에게 [[테러]]를 행했다는 점에서 유사한 데다 무엇보다 리퍼트 대사의 쾌유 기원을 내세운 각종 극우 시민단체의 과도한 사과 분위기도 이 사건 당시 일본의 분위기와 유사하였기 때문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 피습 사건]] 문서에 나와 있다. * [[아베 신조 피살 사건]]과 [[기시다 후미오 암살 미수 사건]]이 일어나자 비슷한 사례로 주목받았다. [[분류:암살 미수 사건]][[분류:메이지 시대/사건 사고]][[분류:1891년/사건사고]][[분류:시가현의 사건사고]][[분류:러일관계]][[분류:외교 사건 사고]][[분류:러시아 제국의 역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